옛길박물관


옛길영상관
위성으로 보는 문경
토끼비리
한국의 고개
희망을 품고 떠나는 길
영남대로 천리길
영남대로
한국의 역과 원
보부상·지리지
길과 스토리텔링
조선선비들의 여행
풍속화로 보는 길
백두대간에 서다
길테마갤러리


 봇짐을 챙기며

2층 전시관에서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본 영상관에서는 사람과 길에 대한 이야기를 멋들어진 애니메이션과, 아름다운 영상으로 나누어 보여줍니다. 전체 상영시간은 8분 내외이며, 1회 총 수용인원은 배치된 좌석 기준으로 40명입니다.

 위성으로 보는 문경


가로 5m, 세로 4m의 정교한 위성 사진을 통해 영남대로 옛길, 신작로, 2차선국도, 4차선국도, 철로, 고속도로가 모두 지나고 있는 문경의 지리학적 특징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우리나라 [길박물관]으로서 문경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특히 본 전시실은 문경의 옛 지도들과 현재의 위성사진을 나란히 비교해 볼 수 있어 오늘날 문경이 지니고 있는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읽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경의 미래 모습까지 투영해 볼 수 있는 특별한 전시 공간입니다.풍광이 수려한 문경의 자연경관을 문경새재 역사유적 및 관광명소와 관련된 이야기로 함께 엮어 모두 여덟 개 부문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토끼비리

문경새재아리랑 대표사설 “문경새재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나간다” 가 수록되어 있다.

 한국의 고개

고개는 산이나 언덕을 넘어다니도록 길이 나 있는 곳을 말합니다. 또한 일의 중요한 고비나 절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고개는 우리 역사의 고비 때마다 희망과 좌절이 교차한 곳이기도 합니다.청운의 꿈을 안고 넘나들던 선비에서부터 삶의 역경을 참아가며 눈물로 드나들던 민초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문물이 스쳐가면서 남겨놓았던 사연들이 길 위의 역사와 고개의 문화를 만들었습니다.본 전시실에서는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 문경새재를 중심으로 백두대간을 따라 위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주요 열 두 고개에 대한 이야기를 각각의 동영상을 선택해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희망을 품고 떠나는 길

조선시대의 과거제도는 실력위주의 인재등용 방식이었다. 실력을 키운 인재들은 저마다의 청운의 꿈을 품고 과거길에 올랐다.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 라는 뜻을 가진 문경은 과거길에 오른 선비들이 선호하던 길로서 영남대로가 지나는 곳이다.

 영남대로 천리길


 영남대로

조선왕조 개국과 동시에 조정은 한양-동래간 간선도로의 노선을 확정하였는데, 이것이 영남대로다. 특히 영남대로는 한양을 중심으로 X자 축으로 이루어진 조선시대 9대 간선도로 중 가장 대표되는 도로이다. 960여 리에 달하는 길에 29개의 주요 지선이이어져 있었고, 총연장이 약 380km로 한양에서 부산을 잇는 최단코스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역과 원

역(驛)은 중앙과 지방간의 왕명과 공문서를 전달하고, 물자를 운송하며, 사신의 왕래에 따른 영송과 접대 및 숙박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주로 담당하였습니다. 이와 달리 원(院)은 일반상인이나 여행자들의 숙식을 위해 설치된 시설로서 상업과 민간 교통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장소입니다.우리나라의 역원제도와 그 기능에 대해 자세히 안내하고 있는 본 전시실에서는, 조선시대 간선도로가운데 제 4로와 5로가 경유하는 곳으로서 영남대로의 허브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던 유곡역과 문경의 여러 원에 관한 내용을 유곡도속역변천사와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특히 이 지역 출신의 조선후기 관료 임종수(1841~1893)와 관련된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구한말 당시의 사회·경제사를 살필 수 있는 유곡역 고문서를 함께 소개하고 있어 매우 뜻 깊은 전시공간입니다.

 보부상·지리지

옛길과 가장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무거운 짐을 지고 산넘고 물 건너 이문을 쫓아 팔도강산을 떠돌아 다니던 사람들! 바로 보부상이다.

 길과 스토리텔링

한양과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 위에서 각각 정반대의 방향으로 떠나 돌아오는 두 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1617년 초가을, 지병을 치유하기 위해 동래온천으로 떠났던 당대의 대학자 한강(寒綱) 정구(鄭逑, 1543-1620)의 요양길과,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 철폐될 위기 앞에서 한양으로 떠났던 안동 유생들의 1717년 상소길을 생생한 그림 설명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떠날 때는 슬픔과 걱정으로 떠났지만, 두 이야기 모두 기쁨과 여유를 찾아 돌아오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네 삶에서 길이 지니고 있는 희망의 속뜻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본 전시실에는 정구 선생 동래온천 요양기 목판본(1676)과 함께 벼슬아치가 공무로 지방에 나갈 때 역마를 징발하는 증표로 상서원에서 발행한 마패와, 전라도 장성의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의 송사(所志)에 대해 마패로서 직인을 대신한 암행어사의 판결 내용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조선선비들의 여행

한양과 동래를 잇는 영남대로 위에서 각각 정반대의 방향으로 떠나 돌아오는 두 개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1617년 초가을, 지병을 치유하기 위해 동래온천으로 떠났던 당대의 대학자 한강(寒綱) 정구(鄭逑, 1543-1620)의 요양길과,선현들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 철폐될 위기 앞에서 한양으로 떠났던 안동 유생들의 1717년 상소길을 생생한 그림 설명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떠날 때는 슬픔과 걱정으로 떠났지만, 두 이야기 모두 기쁨과 여유를 찾아 돌아오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우리네 삶에서 길이 지니고 있는 희망의 속뜻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본 전시실에는 정구 선생 동래온천 요양기 목판본(1676)과 함께 벼슬아치가 공무로 지방에 나갈 때 역마를 징발하는 증표로 상서원에서 발행한 마패와, 전라도 장성의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의 송사(所志)에 대해 마패로서 직인을 대신한 암행어사의 판결 내용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풍속화로 보는 길

본 전시실에는 오고 가는 옛길 위에서라면 흔히 만날 수 있었던, 마소에 짐을 싣거나 달구지에 연결시킬 수 있는 운반구인 ‘길마’를 비롯하여 짚신을 삼는데 쓰는 신골과 짚신, 그리고 말 등에 얹어 귀중한 문서나 엽전 등을 보관하던 가죽으로 만든 행낭 및 말 재갈 등이 같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백두대간에 서다

대간(大幹)이란 큰 줄기를 뜻한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의 병사봉에서 시작하여 계곡이나 강을 건너지 않고 산줄기만으로 지리산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큰 줄기를 말한다. 한반도의 등뼈이며, 우리 땅의 남과 북이 하나의 대간으로 이어져 비로소 삼천리 강산이 된다.백두산을 뿌리로 하여 하나의 대간, 하나의 정간, 열 세 개의 정맥이 마치 나무줄기와 가지처럼펼쳐지는 것이다. 백두산은 우리 산의 시작점으로서 한반도의 모든 산줄기와 통한다. 백두대간은 그 길이가 약 1,400km에 달하며 고도는 100m에서 2,750m에 이른다. 백두대간이 완성된 하나의 개념으로 처음 알려진 것은 1769년(영조45), 조선 후기 여암(旅庵) 신경준(申景濬: 1712 ~ 1781)의『산경표(山經表)』에 의해서이다. 총 102쪽 분량의 책으로 마치 족보처럼 구성되어 있다.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들은 우리나라의 열 개의 큰 강을 구획하는 울타리다. 이름 또한 이들 물길에서 따왔다. 이 땅의 모든 생활영역의 자연스러운 분계를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배산임수의 취락형성, 식생활과 주거양식의 구분, 언어권의 분포, 옛 보부상의 상권과 오일장의 권역 등이 산경의 산줄기로 쉽게 구분된다.